간헐적 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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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친일 매국노가 지었지만, 예술가가 살았다

대한제국의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협조한 경술국적(庚戌國賊) 8인 중 윤덕영(尹德榮, 1873 ~ 1940)이 있다. 그는 일본의 늑약 체결에 가담, 협조한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이를 이용하여 옥인동 땅의 반 이상을 계속 사들이고, 저택 벽수산장(碧樹山莊)을 지은 대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그가 결혼한 딸을 위해 지은 곳, 나중에는 화가 박노수(朴魯壽, 1927 ~ 2013)선생님께서 구입해 사셨고 작품 활동을 하셨던 곳, 이후 종로구에 기증하여, 지금은 박노수 선생님의 작품과 수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에 다녀왔다.

박노수 미술관(朴魯壽 美術館)
미술관(朴魯壽_美術館)

수성동계곡까지 많지 않은 등산객과 마주치며 다녔고, 점심때가 지나 옥인동에 도착했다. 좁은 차도를 가득 채운 자동차와 버스, 골목을 채운 인파를 마주해야 했다. 서울에서 유명한 데이트코스인 또 다른 이름, 서촌임을 실감했다.

옥인동 낮은 언덕에 자리한 박노수 미술관은 예스러움을 머금고 있다. 지하와 1층, 살짝 나온 포치는 붉은색 벽돌로 만들어졌다. 그 위로 하얀색 벽과 넓은 창의 2층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을 둘러싼 앞과 뒤뜰, 언덕이 있는 미술관이다.

앞뜰에서 본 박노수 미술관(朴魯壽 美術館)
앞뜰에서 본 박노수 미술관(朴魯壽 美術館)

앞뜰은 가운데로 길을 냈고, 담 쪽은 새싹과 정원수 사이로 조각과 수석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쪽도 다른 석물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푸짐한 음식을 놓기에는 작지만, 차 한잔하기 적당해 보이는 돌로 만든 상과 의자도 있다.

앞뜰에 있는 수집품과 제작한 석물들
앞뜰에 있는 수집품과 제작한 석물들
미술관 주변으로 많은 수집품과 석물이 있다
미술관 주변으로 많은 수집품과 석물이 있다

바깥벽에는 지하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설치한 녹슬고 오래된 지붕과 빗물받이가 있다. 내리는 비에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의 리듬을 들려줄 것이 확실하다.

오랜 세월을 느끼게하는 빗물받이

앞뜰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나지막한 창고가 있다. 창고 위에는 항아리가 있고 그 옆의 작은 연못에는 몇 마리의 물고기가 놀고 있다. 크거나 멋스럽지는 않은 이 공간은, 어릴 적 나만의 비밀 장소로, 혼자 놀며 하루를 보냈을 것 같은 기억을 만들어줬다.

창고와 장독대
창고와 장독대
창고 옆 작은 연못에는 물고기가 있다
뒷 언덕에서 본 미술관

미술관 내부는 촬영할 수 없습니다.

계단과 포치를 지나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삐걱대는 나무 마루 벽에는 박노수 선생님의 작품과 공간의 용도를 표시한 안내 글을 볼 수 있다. 나무 마루의 복도는 넓지 않았고, 그에 비해 방은 넓었다. 처음 본 박노수 선생님의 그림은 ‘깔끔하고 시원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한국화와는 확실히 다른 그림이다. 선은 간결했고, 다른 색과 섞이지 않고 또렷한 색과 여백으로 이루어진 시원한 그림이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간다.

2층 화장실에는 왠지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스테인리스 욕조가 있다. 과연 처음 지을 때부터 있었는지, 나중에 설치한 것인지 궁금하다. 하얀 타일의 벽과 함께 너무 낯선 모습을 뒤로하고, 화가의 작업실로 옮겼을 땐 창밖을 볼 수밖에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수와 담 너머 동네의 모습이, 그런 창을 품고 있는 방의 모습이 예술가의 창작 의욕을 불사르고, 휴식을 취하거나 멍 때리는 데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창밖으로 그려지는 사계절이 궁금해진다.

검은 선과 눈이 시린 푸른색, 노랗고 붉은 원색 가득한 박노수 선생님의 그림을 뒤로하고 나오며, 이 집을 구입하심과 화가로서 능력을 가지심이 부러웠다.

박노수 화백의 흉상
박노수 화백의 흉상

박노수 선생님께서 사셨을 때의 방, 부엌, 화장실 등에 작품을 배치하여 다른 미술관, 박물관에 비해서 편안한 맘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친일 매국노 중 으뜸가는 사람이 지은 집. 그곳을 구입해서 생활하시고, 그림을 그리시며, 예술품을 모으셨던 박노수 선생님. 선생의 작품과 각종 수집품을 집과 함께 사회에 환원한 예술가의 결정.

부끄러운 한 사람의 욕심으로 만든 곳을 우리는 공간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감상의 공간이 돼 있다. 이 공간이 존재함에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일지 고민을 하며 서촌 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종로문화재단 박노수미술관

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1길 34
관람시간: 화~일요일 10:00~18:00(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휴관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날
안내사항: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신발을 벗고 입실
관람료: 아래 출처 Site 참고

종로문화재단 박노수미술관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parkns01)

카테고리 : 뱅기 안 탄 역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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